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뮌헨 협정 (문단 편집) == 서론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youtube(Xx79EWDfS44, start=5)]}}}|| || 협정 이후 영국으로 복귀한 뒤 공항에서 연설하는 [[네빌 체임벌린]] || "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(Peace for our time)"라는 문구로 널리 알려진 뮌헨 협정은 기본적으로 [[주데텐란트]]라는 독일인 인구가 많은 [[체코슬로바키아]]의 지역을 나치 독일에게 양도하는 대신 독일이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맺은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.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[[민족자결주의]]와 [[베르사유 조약]] 사이의 모순이 원인으로 꼽힌다. 체코슬로바키아는 사실 [[제1차 세계 대전]]의 종전 이후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의 해체 과정에서 [[민족자결주의]]에 따라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들이 독립하여 같이 건설한 국가로,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였다. 국가를 지배하는 두 민족인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들은 수백년 동안 각각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으며 다양한 국경, 영토 문제로 졸지에 중부 유럽의 수많은 민족들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. 이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가장 거대했던 [[소수민족]]은 바로 300만에 달하는 [[주데텐란트]]의 [[독일인]]이었다. [[나치 독일]]의 [[아돌프 히틀러]]는 줄곧 민족자결주의를 역으로 이용해 독일인의 자결을 요구한다는 명목으로 독일인이 거주하는 주변국들의 영토를 병합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고 [[안슐루스]]를 통해 오스트리아를 병합함으로써 한번 실현시키는데 성공하였다. 그는 다음 목표로 체코슬로바키아를 노리기 시작했고 아직 독일과의 정면 충돌을 할 능력도, 의지도 없었던 [[영국]]과 [[프랑스]]는 히틀러에게 우선 주데텐란트를 양도함으로써 유럽 내 군사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. 결국 1938년 9월 30일 [[뮌헨]]에서 이탈리아의 중재 하에 만난 영국, 프랑스, 독일 정상들은 엄연한 주권국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한 채 나치 독일에게 주데텐란트의 영유권을 양도하는 대신 독일이 더 이상 이웃나라의 영토 병합을 하지 않는 것에 합의하였다. 이 협정으로 인해 주테텐란트를 상실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하루 아침 만에 전체 국토의 30%를 잃고, 500만명의 인구를 잃었다. 그러나 히틀러는 거기서 만족할 의향이 전혀 없었고 고작 6개월 만에 약속을 깨버 린 채 체코를 완전히 병합하고 슬로바키아를 [[괴뢰국]]으로 전락시켰다. 체임벌린이 떠벌린 평화가 6개월 만에 깨져 버리고 유럽의 주요 산업국 중 하나였던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의 수중 아래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. 전쟁을 피하고자 굴욕적인 평화를 맺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자충수만을 두게 된 꼴이 되어 버린 뮌헨 협정은 네빌 체임벌린이 언급한 "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(Peace for our time)", 내지는 "우리 시대의 평화(Peace in our time)"라는 구절로 기억되며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중 있었던 매우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